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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다녀왔습니다.

고기복 대표는 지난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는

호주웨일즈대학 외교 훈련 프로그램 (DTP),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 (MFA), 중동교육 및 개발 센터 (MECTD)가 두바이에서 6월 23-26일까지 공동 주최하는’책임있는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지역 역량 강화 워크샵에 참석했습니다.

워크숍은 시민사회와 정부, 개인이 협력을 통해서 국제 인권과 사업 구조, 표준들에 대한 공유된 이해를 도모하고, 우수 사례를 모색하여 실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DTP와 MFA는 2004년부터 아시아 및 중동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협력해 왔습니다. 한국의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JCMK)는 MFA 회원 단체이고, (사)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1218ForAll)은 jcmk 회원 단체입니다.
DTP, MFA 및 MECTD는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 유지를 위한 국제규범의 이행과 서로 다른 조직과 영역에서 경험한 것을 공유하고자 협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잘 배우고 왔습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보호에 관한 한 국가에 대한 서구 활동가의 신뢰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한국에선 이상주의자 아닌 이상, 국가는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국가일지라도 인권침해를 하는지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서구 활동가들은 국가가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인권침해를 하기도 한다는 관점이 결여돼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지나치게 투쟁적인가?ㅋㅋ1975년부터 공식 문건에 이주노동자 관련하여 가치 중립적인 용어 사용을 결의하고 실천해 왔던 서구와 비교할 때, 이주노동자 차별을 선동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한국은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인권의식에 있어서만 놓고 보면 50년은 뒤쳐져 있습니다.

서구 활동가들은 국가가 (시스템적으로)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주체가 되기보다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기업에게 윤리적인 경영을 요구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책임성 있는 경영을 요구할 때, 자산에 비해 주식이 고평가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기업은 없다는 것입니다.(다국적 기업의 원청과 하청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영 여건이 열악한 하청으로 갈수록 문제가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대기업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는 한국과 다르지만, 평판 리스크(?) 관리를 하는 기업을 압박하여 이주노동자 권익 증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인데, 정부는??? 같은 활동을 해도 인식 차이가 이렇게 클 수 있습니다….사람은 만나 봐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익숙한 일상을 떠나 낯선 외국에 가면서 이웃집 마실가듯이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났습니다. 낯섬에 두려움이 아닌 궁금증으로 다가가다 보면 간만에 찾아온 조용히 사색할 시간을 놓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가며 만난 택시기사는 두바이에서 11년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갈 때 만난 파키스탄 출신 기사는 7년째 두바이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네팔 출신의 호텔 식당 매니저는 두바이 생활이 15년째였습니다. 두바이 공항에서 만난 귀국 중이던 필리핀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년, 두바이에서 2년을 일했다고 했습니다. 귀국 중 경유한 방콕 공항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은 9년을 두바이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잠시 스쳐가는 사이인데도 그들은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했다는 외국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습니다. 두바이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60킬로였던 몸이 2년 만에 48킬로가 됐다며 힘들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견딜만하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들이 잘 커줬다며 기뻐하고 대견스러워했습니다. 겨우 허리춤에 닿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보다 크다며 손짓으로 머리 위로 선을 긋던 이는 자식들을 잘 키워냈다며 자랑했습니다.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그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이 같았습니다.

먼저 묻지 않아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그들은 말에 배고픈 사람들 같았습니다. 자식들 이야기를 하고, 그리움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손 하나 까딱 않는 두바이인들(에미레이티)에게 고용된 그들의 현실은 24시간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로, 어머니로 살아내는 이들의 강인함은 젊어서 주먹 꽤나 쓰고 누구한테 고개 숙여본 적 없던 남자도 자식새끼 위해서라면 똥지게도 진다는 어른들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낯섬은 금세 익숙해졌고 일상성을 가질만할 때 귀국했습니다. 작가 조정래는 ‘삶의 필연성과 처절성은 늘 소설가의 상상력보다 깊고 넓은 파장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소설가의 상상을 능가하는 이주노동자 현실은 그 땅에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한참을 더한 현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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